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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

episode 1. 키르키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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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10th, 2025(Sun)

2025년 8월 10일

 

 

 

 

 

<가보지 않은 길, 해보지 않은 선택>

 

 

 

 

 

 

 

 

 

 키르키스스탄을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나의 정신과 육체는 이미 동이 나 바닥을 보인지 오래 였다. 고갈된 능동성, 창의성, 리더십. 많은 부분에서 나는 지쳐있었다. 자신감이 결여된 병든 마음이 6개월간 지속되었다. 모든 책임과 생산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 매해 여름 나는 바다로 몇 번이고 떠났다. 바닷물에 몸을 적시지 않고 지나는 여름은 공기만이 뜨거울 뿐 내겐 식어버린 계절이었다.

그러나 올 초부터 마음이 이미 잿빛의 길목에 서 있었다. 여름도 여행도 더 이상 나를 들뜨게 하지 않았다. 봄엔 미지근하게 스러지던 것들이, 여름이 되자 숨 막히게 뜨거운 공기로 달궈지며 와르르 무너졌다. 바다로 향하던 길은 막혔고, 달력 위 여름이 통째로 뜯겨나간 듯했다.

 

 

"여름이 나한테서 도망가는 것 같아"

 

이 계절의 모든 것들이 너무 좋아서 시작하게 된 나의 일이 나에게서 여름을 자꾸 빼앗아가는 것처럼 느꼈다. 모두가 여름으로 향할 때 모니터 앞에서, 백화점 안에서, 작은 스마트폰 안에서 모든 에너지를 소진했다. 그러면 금세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겨울이 온다.

나약하고 정신나간 대표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마음을 더 후벼팠다. 못난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지속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 이 모든 것을 멈추기로 했다. 7월 17일 나는 사무실을 내놓았다. 해보지 않은 선택, 그 중에서도 허공에 발을 내딛는 가장 두려운 선택을 했다.

 

도망간 여름 사이에서 나는 처음으로 산을 찾게 되었다. 발바닥이 저리도록 걷고 싶었다. 고통으로 빌어낸 평화가 찾아오길 기도하는 내게 목적지는 오로지 산 꼭대기었다. 함께 여행을 가기로 했던 두 명의 친구 중 한 친구의 임신 소식으로, 마음을 바꿔 열 명의 동행자를 구하는 글을 SNS에 포스팅하게 되었다.

신원이 불분명한 모르는 사람들과의 동행이 (특히 예측 불가한 빌런의 존재가) 염려되었지만 이상하리만큼 둘보단 셋, 셋보단 열이 함께 걷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하루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모든 인원이 모집되었고 그 중엔 어떠한 접점도 없이 혈혈단신으로 신청한 몇몇도 있었다. 내가 앞서 꺼내놓은 여행의 계기처럼 그녀에게도 분명 산을 오를만한 사연이 있을거라 짐작했다.

이후 키르키스스탄으로 떠나는 전날까지 나는 숨돌릴 틈 없이 연달아 23일을 꼬박 출근했다. 출국 전날 밤을 새워 짐을 쌌고 스스로의 건강에 대한 불신이 앞선 무거운 걸음으로 공항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어설픈 목례와 인사가 오고 간다. 첫 대면이니만큼 서로를 소개할 시간을 만들 수도 있었지만 작위적인 느낌을 주고 싶지 않다. 뭐든 자연스러운게 좋으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백패킹은 처음이라고 했다. 이런 단체 여행도 처음, 중앙 아시아도 처음, 고산 지대도 처음. 오르기 위한 단 하나의 목적으로 모두가 같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5년 7월 29일. 아홉 명의 여성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 위로 일제히 떠났다. 그 발걸음이, 서로의 무언가를 불러올 줄은 아무도 모른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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